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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의 기회를 붙들라! (종려, 수난주일 설교)
글쓴이
: 최성욱
날짜
: 2018-03-24 11:32:28
조회수
: 145
요 12:3-6 헌신의 기회를 붙들라! 180325주일낮예배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아멘.
오늘은 이렇게 인사할게요.
헌신의 기회, 꼭 붙드세요!
여러분, 이런 시가 있습니다.
너희들, 날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너희들, 날 빛이라 부르면서도 우러르지 않고,
너희들, 날 길이라 부르면서도 걷지 않고,
너희들, 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너희들, 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너희들, 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너희들, 날 부하다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너희들,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너희들, 날 어질다 부르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들, 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너희들, 날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들, 날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 않으니,
그런즉, 내가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우리들의 입술만의 사랑, 형식적인 믿음을 그대로 지적한 자책의 시였어요.
오늘은 종려주일이며, 주님의 수난주일입니다.
수난주일이 올 때마다 언제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이 메시지로 설교했는데,
오늘은 주님을 팔아버린 가룟 유다와 주님 발아래 향유를 부어드렸던 마리아를 비교해 가면서,
과연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가?
가룟유다는 주님의 제자이면서도 왜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파멸했는가?
이것을 통해 우리들의 온전한 헌신의 삶을 드러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마리아와 가룟 유다를 비교해 봅니다.
헌신의 삶에서 두 사람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큰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 차이입니다.
진정한 헌신과 왜곡된 헌신이예요.
주님을 위한 헌신이냐? 나를 위한 헌신이냐?
마리아는 철저하게 주님을 위해 헌신을 했고,
유다는 주님을 향해 헌신했지만 목적은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헌신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그 증거를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게요.
온전한 헌신을 하려면?
1. 내 욕심이 주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아야 합니다.
유다는 그렇지 않았어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의 기대가 너무 컸어요.
주님을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실 분으로 확실히 믿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유다는 주님이 꼭 필요했습니다.
주님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 꿈이 비록 자기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꿈이었더라도 그 꿈이 주님의 뜻보다 앞서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과 주님이 하시려는 역사가 다른 게 확실해지니까 여지없이 주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돌아오는 대가를 따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헌신도 물질의 가치를 뛰어 넘는 것입니다.
내 소유의 가치를 따지지 않는 헌신, 이것이 진정한 헌신의 모습입니다.
나의 야망이나, 욕망,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절대로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욕심을 다스리면 주님께 헌신할 수 있습니다.
저의 사택 거실에, 작은 어항이 있어요.
권사님 한 분이 작은 유리그릇에 구피 몇 마리를 가져다 주셨는데 많이 불어나서 조금 더 큰 어항으로 바꿨는데,
제가 새벽기도를 인도하러 일어나면서 어항에 불을 켜 주면 제 쪽으로 몰려와 난리를 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깜깜하다가 밝아지니까 좋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실은요.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먹이를 주는 게 고정일과가 됐어요.
그런데 하루는 몇 마리가 한꺼번에 죽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배가 빵빵하게 커진 거예요.
사랑한다고 밥을 조금씩 더 준 게 탈이 나고 만 거예요.
‘목사가 애꿎은 구피 몇 마리를 죽였구나! 이제는 아무리 난리를 쳐도 밥을 많이 주지 말아야지’ 결심을 했는데,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니까 얘들이 또 밥 달라고 난리를 치는 거예요...
“이 멍청한 놈들아 네 친구들이 먹다가 죽었는데 또 달라면 어떡하냐?”
그리고 가만히 있는데 계속해서 밥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짐승이 바로 이런 거구나, 이렇게 미련한 거구나, 제 눈앞에서 먹다가 많이 먹고 죽은 놈이 있는데도 또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이게 바로 짐승의 모습이구나!’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이 미련한 구피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죠...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나 붕어나 다를 게 없잖아요?
당장 먹으면 죽는 일인데도 일단 먹고 보자는 인간들, 짐승하고 다를 게 없어요. 똑같지요?
그런데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름을 ‘난 바보’ 라고 바꿔야하지 않을까요?
요즘엔 중국의 황사보다도 미세먼지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지요?
옛날에는 중국에서 문화가 왔는데 이제는 몹쓸 것이 너무 많이 몰려옵니다.
납이든 생선부터 발암물질 덩어리로 만든 숯이나 방부제에 아주 절여서 고사리 같은 나물들을 보내질 않나, 하여튼 몹쓸 것들만 보내고 있는데,
이 미세먼지도 인간의 몰지각한 욕심 때문에 생긴 것 아닙니까?
당장 배를 채우겠다고 풀과 나무는 뜯어내고 베어내고 그 자리에 나무는 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우리는 여력이 없으니 아쉬우면 너희가 도와주면 될 거 아니냐?”
당장 눈앞의 이익만 붙들고 있는 무분별한 욕심의 결과가 이제 우리 앞에 커다란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유다도 자기 욕심과 꿈이 주님의 뜻보다 앞섰습니다.
이 꿈이 주님을 섬기는 것보다 앞섰기 때문에 결국 헌신을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도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보세요.
마리아는 자기의 꿈과 욕심을 주님 앞에 모두 다 내려놓았습니다.
자기의 꿈과 소망 모두를, 주님 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여러분, 마리아처럼 주님의 사랑 앞에 자신의 최고의 것마저 포기하고 내어드리는 것, 이것이 온전한 헌신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내가 가진 꿈과 이상이 주님의 뜻보다 앞서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유다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마리아처럼 주님 발 앞에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유다와 마리아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을 통한 기쁨의 있고 없고의 차이였습니다.
마리아는 주님 때문에 가진 기쁨이 충만히 있었고 가룟 유다는 그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냥 자기 의지로 주님 곁을 따라다닌 것뿐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미 죽어 무덤 속에서 나흘이나 된 이미 시신이 썩기 시작한 자기 오라비가 주님의 손으로 살아난 기쁨과 감격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통해 영혼이 살아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님 때문에 가장 큰 기쁨을 가지고 있으며 주님께는 내가 가진 최고의 것도 얼마든지 내드릴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주님 때문에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영원한 지옥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나왔잖아요?
그런데 왜 기쁨이 없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다시 새롭게 일어나는 예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온전한 헌신을 하려면,
2. 나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유다를 보세요.
유다의 실수 중의 하나가 자기가 정해놓은 기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자기의 기준과 판단으로 재었고 평가했습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습니다.
또 자기가 체험하지 못한 은혜를 남들이 체험할 수 있다는 것도 용납이 안됐습니다.
그런 것들을 충분히 열어 놓을 겸손이 유다에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교만했고 너무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다 자신의 경험 아래 한 자락씩 깔고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감격 속에 헌신하는 자의 마음을 유다는 도무지 이해도 할 수도 없었고 용납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감격이 없는데 남의 감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난 맞았고 마리아, 넌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큰 오만입니까?
내가 모르는 은혜를 다른 사람들이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는 이 겸손만 유다가 가졌더라도 유다는 마리아를 비웃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마음 안에, 이 겸손이 거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나만 똑똑하고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다는 큰 착각 속에 언제나 젖어 살았기 때문에 마리아의 헌신을 즉각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행하는가?
차라리 낭비하지 말고, 그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게 낫지 않겠는가?”
언제나 자기 생각은 옳았고 언제나 자기 생각은 빈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자만 아닙니까?
오만입니다. 교만입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를 준비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옳다고 생각하고 마리아를 꾸짖었지만, 이 일은 마리아가 너보다 옳았다 그는 네가 생각 못한, 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여러분, 유다는 자기 생각 밖의 것이 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큰 착각이었습니다.
또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자신만만했습니다.
이것은 가장 큰 교만이었습니다.
유다는, 이 교만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교만은, 사탄이 거하기에 가장 좋은 온상입니다.
사탄에게 정복당할 쓰레기 더미가 바로 교만이예요.
유다는 이 쓰레기 더미를 사탄에게 내주었고 사탄은 그를 마음껏 유린해 만신창이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문제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다 온전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모두 다 문제를 가진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와 우리가 다른 것은,
그는 사탄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정복당할 쓰레기를, 그는 끝까지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쓰레기가 이는 곳에는 뭐가 들끓죠?
쥐들입니다.
힘들여 쫓지 말고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놓으면 쥐들은 왔다가 그냥 가버리게 돼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의 영을 정복하고 승리하는 간단한 비결입니다.
우리들도 교만의 쓰레기들을 잔뜩 쌓아놓고 살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바로 이 쓰레기들을 치워버려야 할 장본인이 아닙니까?
유다처럼 교만으로 망하지 않고 마리아처럼 헌신하려면, 먼저 우리 속의 쓰레기들부터 치워야 합니다.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 수난주간특별새벽예배로 모이는데, 특별히 올해는, ‘은혜의 영성으로 일어서라!’이 주제로 말씀을 나눕니다.
새벽마다 함께 모여, 내 심령 안의 교만의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치워내는, 그래서 정결케 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온전한 헌신자로 일어서려면,
3. 주어진 기회를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와 마리아의 또 하나 결정적인 대비가,
기회의 포착에서 극렬하게 드러났습니다.
마리아는 헌신의 기회를 찾아 붙들었고, 유다는 찾아온 기회마저 걷어차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유다는 주님으로부터, ‘너는 세상에 나지 아니했으면 더 좋았겠다!’ 탄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도적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스승을 팔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어진 최상의 기회였는데, 무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의 이 실수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실수였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영적인 축복의 기회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헌신의 기회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의 죄인들이 모두 다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은, 그들이 죽음의 죄, 원죄를 범한 죄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죄 위에, 원죄를 다 덮고 사하신 주님의 보혈이 있는데도, 그것을 무시하며 거부했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까지 가졌던 교만과 착각과 탐욕과 실패,
이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만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 26:23-25)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이미 주님은 유다가 저지를 것을 친히 알려주셨고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무시했습니다. 거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멸망의 길로 스스로 걸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리아를 보십시오.
마리아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께 헌신할 기회를 끈질기게 찾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야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었지만, 마리아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한다는 것보다도,
주님을 이 땅에서 뵙는 시간이 거의 다 사라져간다는 이것이, 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어서 속히, 주님께 받은 은혜의 보답을 드려야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께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만이 내가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마리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기회는, 눈을 씻고 찾는 자에게 반드시 다가옵니다!
천국도,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도, 십자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십자가를 질 기회를 결코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십자가를 넘어서서,
영광의 부활과 승천으로 나아가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인생 속에도 여러 번의 헌신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주님이 감격하실 헌신의 기회는,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목회를 해오는 동안 주님이 행하신 일을 보면,
그때마다 주님이 준비하신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개척에는, 개척에 준비된 일꾼이 있었구요.
건축에는, 건축에 준비된 일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헌당을 하는 마무리에도 반드시 준비된 일군이 존재할 것입니다. 아멘?
그런데 그 준비된 일꾼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앞서 감동을 받았고,
누구보다도 앞서 헌신의 기회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행하시려는 일에 주님이 준비해 놓으신 일꾼의 공통점입니다.
반대로, 마지못해 어슬렁어슬렁 쫓아가는 분들도 있었는데, 억지로 끌려가는 교인들이었습니다.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긴 합니다.
그런데 억지로 마지못해 하니까 상급이 없습니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감격도 있고 상급도 있는 일꾼이 있었고,
감격이 없어서 상급도 없는 일꾼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하나, 나에게 주어진 헌신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예인들은 모두 다 어떤 자리에 서야합니까?
마리아의 헌신입니까? 유다의 헌신입니까?
헌신의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마리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의사가 아주 날씨가 험악한 날 밤에,
왕진을 청하는 전화가 걸려오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어요.
그러나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더 강렬해서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을 뚫고 도움을 요청한 가난한 노동자의 집으로 달려갔어요.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그 노동자의 어린아이가 생명을 건지게 되었는데,
훗날 그 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그 가난한 집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영국 최고 지도자의 생명을 구한 것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때 생명을 살려 준 그 아이가 나중에 영국의 수상이 된 데이비드 로이드였습니다.
여러분,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는 헌신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헌신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요!
이번 4월 29일(주일) 교회창립 주일까지 꼭 한 영혼을 구원하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 아시지요?
그 중에서도 어린 아이가 주님께 드린 보리떡 5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보세요.
지극히 작고 적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이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영광의 쏘시개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하나,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헌신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이번 한 영혼 구원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꼭 한 영혼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회’며
‘헌신의 기회’ 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아멘?
브로드웨이의 스타 매리 마틴이, ‘남태평양’ 이라는 뮤지컬을 공연하기 위해 막 무대에 오르려는 참이었는데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됐어요.
선배인 오스카 헤머슈타인에게서 온 편지였는데,
그는 이 편지를 병상에서 하인에게 불러줘 쓰게 하고 숨을 거뒀습니다.
그 편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매리, 종은 울리기까지 종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당신이 부르지 않으면 노래가 아닙니다. 사랑은 마음에 품고 있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여, 재능의 사람이여, 그 사랑을 남에게 주어 버리기까지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을 뿜어내세요!“
이 편지를 읽다가 시간이 되어 매리 마틴이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날 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다 무대 뒤로 몰려가 외쳤습니다.
“우리 생애에 이렇게 압도적이고 신들린 연기는 평생 처음입니다!”
매리는 그때, 눈물을 쏟으며 헤머슈타인의 글을 읽어 줬고,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늘밤, 나는 나의 사랑을, 아끼지 않고 나눠주었을 뿐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렇습니다.
종은 울리기까지 종이 아니고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죠?
우리도, 우리의 종을 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 다 주님의 부르심을 붙잡고 한 영혼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그에게 끝없이 나의 사랑을 부어줍시다!
내일 새벽부터 시작되는 수난주간 전교인 새벽예배의 자리로 꼭 자녀들과 함께 나오세요!
이번 수난주간에는, ‘은혜의 영성으로 일어서라!’
이 주제로 말씀을 선포합니다!
오직 이 한 주간은 다른 것은 다 잊고, 오직 이 새벽에 은혜 받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입시다!
그래서 주님이 부어주신 은혜를 확실히 깨닫고 최고의 헌신을 드리며, 그 사랑의 능력이 내가 건져야 할 영혼들에게까지 부어지는 역사를 이뤄내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직 주님께 감격을 드리기를 원하는, 헌신의 마음으로 ‘헌신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고,
하나님께서 우릴 향해 직접 선포해 주셨습니다.
은혜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예인들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박수로 화답을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양>
이제 또 다시 하늘로부터 특별한 선물이 임하시는 시간입니다.
긴급히 응답받을 기도제목을 가지고 오신 분들과
깊은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분은 두 손을 가슴에 얹어주시고, 몸에 질병이 있는 분은 그 질병이 있는 부분에 손을 얹어 주세요.
제가 여러분의 응답과 치유를 위해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찬양을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확신의 찬양으로 선포할 때, 최고의 치유, 최고의 응답이 선물로 부어질 것입니다. 믿음의 손을 얹으세요...
오늘 이곳에 성령님 오셔서
우리의 상처 우리의 질병을
주여 우리의 영혼을 만지사
생명처럼 뛰게 하옵소서
여기 이 시간 치유의 찬송을
마음의 귀로 영혼의 눈으로
오직 주님을 찾는 이 가슴에
영원하신 분을 만나리라
아픈 사람들 여기에 있어요
이 노래 듣고 소망을 가져요(눈물을 흘려요)
주여 불쌍히 여기어 주시사
치유의 힘 받게 하옵소서
내가 너에게 치유를 주노라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치유를
오 너희의 아픔과 상처
하늘의 빛으로 치료하여 주노라
일어나라 소망으로 일어나라 예수를 믿음으로
너의 믿음대로 되는 나라에서
하늘의 문이 열려 모든 병이 사라지네
하늘의 문이 열려 모든 문제 응답되네
예수 안에서 치료하소서, 응답하소서,
살게 하소서, 일으키소서 예수 안에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봉헌> 다 함께 우리의 마음을 담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김향숙 집사님, 찬양합니다.
봉헌 기도>
하나님, 오늘 이 예배에 새로 오신 분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보혈을 덮으시고 확실한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드려진 예물들을 축복해 주시고 이 예물이 쓰이는 곳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일으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식>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지난주 등록자, 변희수 집사님, 변우숙, 박준영 성도님, 축복하구요.
등록을 원하시는 분은 사역자와 안내위원에게 문의해 주세요.
2부 예배 후에 각 선교회 월례회로 모이며,
오후 1시부터 품성훈련과 목장 모임을 시작합니다.
다음 주는 부활주일 감사예배로 드리며, 권사회 월례회로 모입니다. 선교주일은 한 주 미룹니다.
26일(월)~31일(토) 수난주간 전교인 새벽예배,
4월 1일(부활주일 성례예배)와 세례자 교육 3월 31일(토) 오후 5시, 목양실입니다.
4월 29일(창립주일)까지 ‘한 영혼구원’에 집중하세요.
4월 29일(주일)에 교회창립주년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예인교회로 4행시를 공모하고 상을 드립니다.
30선교회장 김향숙 집사님에게 제출하세요.
한 주간 동안 로마서 6장 말씀을, 하루에 4번 이상 읽어주세요.
31일(토) 오후 2시부터 교회대청소를 합니다.
예인 목요전도대와 금요기도회, 기억하세요!
새가족 수료 / 박영순 집사(M.D 손명례, 목장)
이제 다 일어나셔서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다 함께 찬양한 후에,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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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능력을 행하라!
최성욱
2021-02-27
221
654
왜곡의 영을 물리치라!
최성욱
2021-02-19
355
653
인생의 스릴을 즐기라!
최성욱
2021-02-13
307
652
이미 성공자니라!
최성욱
2021-02-06
127
651
변화를 기대하라!
최성욱
2021-01-30
163
650
염려하지 말라!
최성욱
2021-01-22
166
649
성숙한 삶을 살라!
최성욱
2021-01-16
192
648
새해에 이렇게 부르짖으라!
최성욱
2021-01-09
265
647
축복의 통로가 되라! (신년감사주일)
최성욱
2021-01-02
193
646
돌파구를 찾으라! (송년감사주일)
최성욱
2020-12-26
157
645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절)
최성욱
2020-12-24
210
644
사명을 이루라! (대림절 #4)
최성욱
2020-12-19
216
643
믿음으로 경배하라! (대림절 #3)
최성욱
2020-12-11
182
642
믿고 순종하라! (대림절 #2)
최성욱
2020-12-05
360
641
경배의 기회를 붙들라! (대림절 #1)
최성욱
2020-11-28
152
640
거절감의 상처를 치유 받으라!
최성욱
2020-11-21
405
639
감사절에 기억하라! (추수감사 온가족 예배)
최성욱
2020-11-14
176
638
영 분별의 은사를 구하라!
최성욱
2020-11-07
160
637
환경을 다스리라!
최성욱
2020-10-31
104
636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가?
최성욱
2020-10-24
139
제목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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