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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에서 벗어나라! (누가복음서의 종교개혁 2)
글쓴이
: 최성욱
날짜
: 2017-11-18 16:59:56
조회수
: 135
눅 15:32 탕자에서 벗어나라! 171119주일낮예배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멘.
이렇게 인사합니다.
탕자에서 벗어나세요!
여러분, 한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게 쉬워요? 어려워요?
그리고 모든 환경을 갖추고 사는 사람들, 정말 교회 로 데려오기가 더 힘들지요?
주님의 비유 중에 잔치초대 비유를 보세요.
주인이 잔치를 배설해놓고 오라고 청했는데,
“나는 소를 사서 못갑니다”
“쟁기를 산 것 시험해야 해서 못갑니다”
“장가 든지 얼마 안 돼서 못 갑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주님 앞에 오지 못할 이유가 너무 많았어요.
결국엔 못 오고 말았어요.
그래서 잔치 주인이 어떻게 했어요?
“거리로 나가서 보이는 대로 아무나 데리고 와라!”
그랬더니 눈먼 자, 다리 저는 자, 병든 자, 가난한 자들이 잔치로 들어왔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보다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들이 더 축복 받은 자라는 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데, 환경을 통해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십니다.
오늘 눅 15장에,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다 잃어버린 것을 찾는 비유였어요.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의 이야기를 거친 후에,
집 나갔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 가지 비유지만, 사실은 한 가지 이야기였어요.
먼저 둘째 아들이 등장하지요. 사고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내 재산 먼저 상속하라고 졸라댔어요.
당시 유대 상속법으로 맏아들은 아버지 재산의 2/3를 받고 둘째 아들은 1/3을 받는데 미리 받으면 그것의 1/3 밖에 못 받으니까 결국 1/9을 받고 집을 나갔습니다.
당시 법으로 아버지 재산을 미리 상속 받을 수는 있지만 받았다 해도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재산을 처분할 수가 없어요.
처분권이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 탕자는 아버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받아낸 재산을 처분해 현금으로 바꿔서 먼 곳으로, 아버지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당시 법으로 이런 아들은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로 간주했고 마을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여도 되는 큰 범죄자로 여겼습니다.
여기에 탕자의 특징들이 나옵니다.
1. 아버지를 싫어한다는 것,
2.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다는 것,
3. 아버지는 내 인생의 걸림돌이다. 아버지가 살아있다면 될수록 멀리 있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 혹 내가, 하나님 앞에 이런 탕자가 아닌지?
진실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정말 나의 아버지라고 믿아집니까?
그 아버지를 마음으로부터 경외하고 사랑하세요?
그냥 두려워서 섬기고 있는 건 아닌지요?
그냥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아버지 앞에만 있는 건 아닌가요?
여러분, 여기서 이 아들의 행위는 죽음에 속할 만큼 큰 범죄인데도 그걸 허락하고 내준 아버지의 모습을 보세요. 아버지는 왜 줘서는 안 되는 그 재산을 아들이 달라는 대로 주었을까요?
1. 아들이 참된 아들이 되려면 아버지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하는데, 워낙 못된 아들이 깨닫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자신이 할대로 다 해 보고 마지막 밑바닥 인생까지 내려가 봐야 깨달을 거니까 눈물 머금고 그 길로 빨리 갔다 오라는 것이었어요.
2. 그렇게 해서라도 탕자 아들을 참된 아들로 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유대인의 율법을 어긴 아버지’ 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내 아들은 반드시 살리고 봐야겠다! 이 결단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잠시 바라보세요. 죄인인 나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온갖 모욕을 스스로 당하신 사랑을 나타내시지 않았습니까?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홀가분하고 맘대로 할 수 있어서 허랑방탕, 모든 재산을 다 뿌려댔습니다.
여기 ‘허랑방탕’ 의 원 뜻은 ‘구원받지 못한’ 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재산은 순식간에 다 날아갔고 근처에 얼렁거리던 사람들도 다 떠나버리니까 결국 마지막 정착지가 어디였어요?
유대인들이 가장 천하게 여기는 돼지우리 속에서,
돼지들과 쥐엄 열매 쟁탈전을 벌이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어요.
그렇습니다. 탕자는 몸으로 직접 격어야 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그냥 있어서는 절대로 깨닫지 못할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장 밑바닥 인생까지 떨어져 내렸어야 했어요.
아버지는 이걸 위해, 재산도 낭비할 수 있었습니다.
재산보다 아들이 귀했으니까요.
이것이 오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갖고 계신 중심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오늘 나에게도 하나님 아버지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지요?
신앙도 다 끊어버리고, 그냥 내 맘대로 모든 것을 하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습니까?
여기 ‘재산을 다 없앤 후에...’를 잘 보세요.
깨닫지 못하는 탕자들은요. 여기까지, 갈 데까지 가봐야 하고 더 큰 고통을 몸으로 직접 겪어봐야만 변합니다.
그래서 이 아들은 그걸로는 아직도 모자라서 이 비유 속에, ‘그 땅에 흉년이 왔다’ 고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죽게 생겼는데, 엎친 데 덮쳐서 홀로 처참하게 남겨진 아들에게, 나랏님도 막을 수 없는 흉년까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서게 하기 위해, 내 환경의 가장 고통스런 밑바닥까지 나를 돌진하게 하십니다. 아멘?
비로소 궁핍이 찾아왔고 눈물로 돼지열매, 쥐엄열매를 먹다가 이 거지같은 열매도 없어서 못 먹게 될 때까지 내려갔습니다.
여러분, 내 자식에게,
“나는 못 가져도 내 자식에게는 최고의 것만을 주겠다?” 이건 자식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식을 죽이는 거라는 걸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자식이 아직 사람이 덜 됐는데 늘 쾌적한 것으로 다 도와준다?
이것은 내 아들 하나만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망하게 하는 일이며 그 주위에 다가서는 모든 사람들까지 다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똑똑히 들으셔야 합니다.
탕자가 쥐엄 열매를 돼지와 싸워서 뺏어먹다가 그것까지 떨어져 죽게 생기자 그제서야 아버지를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것을 감사로 여기고 있습니까? 수치로 여기고 있습니까?
가난이 수치로 여겨진다면,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징벌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도 잘 사는 친척과 동창이 부럽습니까?
나는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 말씀을 들으며 냉정하게 나를 진단하시기 바랍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의 품군들이 굶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할 정도로 치사한 지경까지 내려앉았습니다.
내가 내 주제를 똑똑히 아는 것,
여기서부터 하나님께 나아가는 진실이 시작됩니다.
먹을 게 다 떨어지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이게 축복입니다.
여러분, 죄의 특징이 원망이라는 걸 아십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지은 죄를 깨달아야 하는데,
후회와 원망만 품고 있지 않습니까?
그 밑바닥에서 탕자 아들은 비로소 자기 죄를 보게 됐습니다.
죄의 자각이 일어나니까 자기는 그 아버지의 자식도 과분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참된 회개의 성숙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속에서 가장 좋은 감정이, 가장 멋진 감정이 회개라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 는 고백보다도 더 감동적인 고백이,
“내가 죄인입니다” 라는 회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왜, “사랑합니다” 보다 더 위대합니까?
“사랑한다” 는 고백은 그것을 듣는 사람만 살리는 것이지만, “내가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은 내가 살고 내 주위 사람들이 다 같이 살아 일어나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고백이 축복입니다! 아멘?
이제는 오늘 본문의 아버지를 보십시오.
집나간 아들을 측은히 여겼습니다.
‘측은히’ - ‘애 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아픔’이예요.
이것이 오늘도 아직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죄인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아픔입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동네 밖에까지 나와 하염없이 기다렸어요. 왜요?
측은히 여겨서 그랬고, 행여라도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마을 사람들 눈에 먼저 띠어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는 즉결심판 당할까봐 그걸 막기 위해 한 시도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 돌아와야 할 아들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또 돌아오다가 다시 사탄에게 잡혀 돌아 갈까봐 한 시도 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제 드디어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여기 ‘달려가다’ 의 원어가요. 육상선수가 경기장에서 전력 질주하는 그 단어를 썼습니다.
위엄 있는 노인이 이렇게 달려간다? 유대 사회에서는 얼굴 들고 다니지 못할 경박한 모습이었는데,
그런데 이 아버지, 그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버지에게 아들은 소중했고, 아버지의 마음은 필사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도 우릴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멘?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은 아버지는 공개적으로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의의 옷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옷을 입혔습니다.
아버지의 권위인 자신의 인장 반지를 끼워서 아들의 신분을 보여줬습니다.
집나간 아들이라고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은 신을 수 없는, 집주인의 아들만 신을 수 있는 가죽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이 날이 특별한 날이라는 걸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돌아온 아들을 향해서는 “너는 나에게 특별한 아들이란다” 이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은, 때로 낭비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여기서 정말 다시 깨달아야 할 게 있습니다.
탕자가 회개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받아줬습니까?
회개도 하기 전에, 그냥 받아줬습니다.
아버지에게 이 아들은, 떠나기 전이나 돌아온 후나 ‘사랑하는 내 아들’ 이라는 것에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실 이 아들이 집을 떠나기 전, 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그냥 내 뜻을 펴는데 방해가 되고 성가신 한 늙은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이 아들에게 진정한 아버지로 높임을 받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잃어버린 아버지를 돌려주기 위해 재산까지 낭비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까지 받아가면서 온갖 수모를 다 당했습니다.
아들은 품군이 될 줄 알았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지요?
아버지에게 아들은 죄를 짓거나 안 짓거나 영원히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미처 고백하지 못하고 회개의 마음만 먹어도 이렇게 역사하시는 이 분이, 나의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아멘?
내 삶에 그대로 적용해 보세요.
현재 내가, 이 아버지의 품속에 깊이 안겨 있습니까?
그런데요. 오늘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전혀 기쁨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또 하나의 탕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온다는데 하나도 기뻐하지 않는 존재가 하나 있었죠? 맏아들이었어요.
사실 맏아들은 종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날도 들에서 종일 일하고 돌아오다가 풍악소리를 듣고 동생이 돌아와 잔치가 벌어진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격분했습니다.
이 아들 역시 또 한 명의 탕자라는 걸 여러분,
다 아시겠죠? 생각해 보세요.
동생이 가출한 것 때문에 그 긴 날들을 밤잠을 못자며 고통 속에 있던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로 기뻐하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랬으면, 제일 먼저 달려와 동생을 안아주고 기뻐 하며 아버지와 함께 잔치를 벌여야 할 자가 누구였습니까?
그런데 분노했고 아버지가 나와서 손을 잡고 끌어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향해 이전 번역에는 “아버지여!” 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원어를 보면, 기가 막힌 말이었어요.
직역하면, “이봐요” 라는 말이었어요.
거기다가 내 동생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자기 동생인데, ‘아버지의 아들’ 이라고 불렀어요.
아버지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왜 이런 거친 말을 그대로 쏟아냈을까요?
이 맏아들은 정확히 따져 말하면,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고 스스로 종의 신분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맏아들 장자였는데, 아들이 아니고 종이었을까요?
그걸 하나하나 밝혀 볼게요.
여러분, 이 집에는 품군이 즐비했죠?
밭에 나가고 들로 나갈 종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 집의 장자는, 밭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밭으로 들로 일하러 갔어요. 종들보다도 품군들보다도 맏아들이 더 열심히 일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맏아들에게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유대법대로 둘째 아들이 아버지 전 재산의 1/9을 가지고 나갔으니 나머지 8/9 은 자동적으로 누구의 것이 되었죠?
자기 몫이죠.
그런데 행여라도 아버지 마음이 변해서 그것이 한 푼이라도 줄어들면 안 되잖아요?
돌아올 아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비축해 두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종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해놔야죠...
아버지의 인정을 확실하게 받아놔야죠...
결국 이 아들은 맏아들이었지만, 자신이 받을 삯만 생각하며 일하는, 종들과 똑같았어요.
아들이 아니었고 종이었다는 말입니다.
정말 아버지의 진실한 맏아들이었다면, 밭에 가질 말고 어디로 가야 했어요?
아버지는 지금 동네 밖을 한 시도 떠날 수가 없어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둘째 아들이 돌아오다가 마을 사람들 눈에 먼저 띠여 돌에 맞아 죽을까봐, 그 기막힌 일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맏아들이 뭘 했어야 했어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을 찾으러 갔어야죠...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동생을 찾아다가 아버지의 고통을 끝내드려야 했지요?
그런데 거긴 안 갔습니다. 왜 안 갔어요?
동생을 찾으면 안 되니까...
행여라도 어디서 발견되는 날이면 6/9 만 남고 2/9 가 날아가 버리니까요...
그러니까 맏아들은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맏아들은 동생이 돌아오지 못하고 영영 죽어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게 진정 아버지의 아들이 할 일입니까?
그런데, 그 아들이 돌아온 거예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죠?
자기 재산 중의 2/9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얼마나 원통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예요?
그러니까 그 잔치를 벌인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도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자고 손을 잡아끄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가 아니라, “이 봐요!” 소리가 절로 나온 거예요. 또 하나의 죽일 놈, 탕자였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일 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보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들? 아들이 아니고 사실은 종이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 맏아들도 이렇게 분석해 놓고 보니 정말 집만 안 나갔지, 집나간 동생보다 더 한 못된 놈이었죠? 그렇다고 고개가 끄덕여집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눈 똑똑히 뜨시고, 귀 크게 여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드리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 속에서 찔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내가 어쩌면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인지도 모르니까요.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보세요.
오늘도 이 땅 교회들 안에, 돌아온 탕자는 아주 적구요. 집에 머물고 있는데 정작 탕자인 교인들이 거의 전부라는 사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교회’ 라는 집 안에 늘 머무르고 있는데,
집을 나간 아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재산, 축복과 상급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종처럼 교회 일만 합니다.
목장도 참여하고 중보기도도 하고 주방팀도 하고 교사도 하고 찬양대, 찬양팀도 하고... 등등등등...
아버지는 집 나간 아들 때문에 밤잠도 못 자고 음식도 못 먹고 눈물을 흘리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닌데, 형은 두 발을 뻗고 잡니다. 배가 넘치도록 먹습니다.
행여라도 집 나간 아들을 찾아오라고 할까봐, 그것만 전전긍긍합니다.
교회라는 집에, 집나갔던 탕자가 돌아오면 하나님 아버지가, 목회자가 나보다 돌아온 그 아들을 더 사랑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내가 바로, 탕자가 아닙니까?
집 나간 아들이 누굽니까?
아직 아버지 집에 돌아오지 못한, 내 곁의 불신자들이죠?
하나님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질 않아서 눈이 짓무르고 밤 잠 못자고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리는데,
그 불신자 형제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예배드리고 목장 모임하고 교회 봉사만 하고 있다가...
전도하라고 하면 고갤 돌리고 못 들은 척 하고 무시해 버립니다.
중보기도 모임까지는 하는데 전도하는 자리는 아예 안 나옵니다. 그건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이게 맏아들 탕자가 아닙니까?
아버지 집에 머물고 있지만, 맏아들 탕자가 맞지요?
그런데요. 이제부터 정말 잘 들으세요.
이 아들은 집 나갔다 돌아온 탕자보다 더 불행한 결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집 나갔던 아들은 깨달았는데, 이 맏아들은 아직도 못 깨닫고 못 보고 있는 게 있어요.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집 나갔다 돌아온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가 벌여놓은 잔치 자리에 들어가 축제 속에 머물며 아버지와 함께 큰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맏아들은 아버지 집 축제 자리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는, 이 가장 중요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이 아버지가 우리 주님이 비유 속에서 하나님을 말씀하신 거라면, 이 잔치 자리가 어떤 잔치자리입니까?
천국의 잔치자리죠?
그러면, 이 천국 잔치에 못 들어간 자가, 작은 아들이예요? 맏아들이예요?
맏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집, 천국은 거절해버리고 버려졌다는, 이 중대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돌아온 탕자입니까? 집에 남아있는 탕자입니까?
집을 나갔었지만 깨닫고 돌아와서 아버지와 함께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작은 아들입니까?
아버지를 거절하고 일만 죽어라 하다가 천국 잔치에도 못 들어간 맏아들 탕자입니까?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십자가 고통,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셔서 승리를 하셨는데, 성부 하나님 아버지는 아직도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계십니다. 왜요?
집 나간 마지막 자식들 중에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여러분, 나는 진정 아버지 하나님의 천국 잔치 속으로 들어와 있습니까?
집에 있었지만 일은 죽도록 했지만 천국 잔치는 들어가지 못하는 탕자는 아닙니까?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찬양과 기도>
성탄절까지 한 영혼 꼭 구원하시되, 억지로가 아니라 그 자식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교회 일 보다도 그 아들의 진정한 아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이 해에, 거창한 개혁 외치지 말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십시오!
탕자의 자리를 속히 떠나십시오!
주님 앞에 깊이 무릎 꿇고 회개하며 성령님의 오심을 구하십시오!
그래서 영혼구원의 능력자로 모두 일어서시라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릴 향해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탕자에서 벗어나라!’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예인들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박수로 화답하겠습니다.
이제 또 다시 하늘로부터 특별한 선물이 임하시는 시간입니다.
긴급히 응답받을 기도제목을 가지고 오신 분들과
깊은 상처의 치유가 필요한 분은 두 손을 가슴에 얹어주시고, 몸에 질병이 있는 분은 그 질병이 있는 부분에 손을 얹어 주세요.
제가 여러분의 응답과 치유를 위해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찬양을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확신의 찬양으로 선포할 때, 최고의 치유, 최고의 응답이 선물로 부어질 것입니다. 믿음의 손을 얹으세요...
오늘 이곳에 성령님 오셔서
우리의 상처 우리의 질병을
주여 우리의 영혼을 만지사
생명처럼 뛰게 하옵소서
여기 이 시간 치유의 찬송을
마음의 귀로 영혼의 눈으로
오직 주님을 찾는 이 가슴에
영원하신 분을 만나리라
아픈 사람들 여기에 있어요
이 노래 듣고 소망을 가져요(눈물을 흘려요)
주여 불쌍히 여기어 주시사
치유의 힘 받게 하옵소서
내가 너에게 치유를 주노라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치유를
오 너희의 아픔과 상처
하늘의 빛으로 치료하여 주노라
일어나라 소망으로 일어나라 예수를 믿음으로
너의 믿음대로 되는 나라에서
하늘의 문이 열려 모든 병이 사라지네
하늘의 문이 열려 모든 문제 응답되네
예수 안에서 치료하소서, 응답하소서,
살게 하소서, 일으키소서 예수 안에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봉헌> 다 함께 우리의 마음을 담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아쉬레 중창팀, 찬양합니다.
봉헌 기도> 하나님,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보혈을 덮으시고 확실한 하나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드려진 예물들을 축복해 주시고 이 예물이 쓰이는 곳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일으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소식>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을 축복하고 등록을 원하시는 분은 사역자와 안내위원에게 문의해 주세요.
오늘은 전도주일로 전도예물을 드렸구요. 오늘 점심식사 후에 오후 12시 45분부터 본당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품훈련’ 과 목장모임을 합니다.
모든 프로그램들은 이 시간 이후로 미루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일은 각 선교회 월례회로 모입니다.
한 주 동안 계속해서 사무엘하 12장 말씀을,
하루에 4번 이상 읽어주세요.
‘한 영혼구원과 건축예물을 헌신서’ 기도하면서 봉헌 시간에 드려주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헌금 구좌도 참조하시구요.
금요부흥기도회, 기도로 능력도 받고 응답도 받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목요, 토요 전도대, 기억하시고 헌신해 주세요.
대학 수능시험과 유학 시험자 엄수빈, 문정현, 이석진, 김관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23일(목, 수능시험일)에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수능시험생을 위한 기도회를 4층 쉼터에서 모입니다.
학부모들과 중고등부 기도 후원자들과 중보기도팀원들 함께 모여서 기도해 주세요.
사랑의동산 140기 영성훈련이 20일(월)~ 22일(수)까지 진행됩니다. 담임목사님, 훈련인도자로 참여하십니다.
주보 안의 환자들 위해 기도해 주시구요.
이제 다 일어나셔서 ‘약할 때 강함 되시네’ 찬양을 부른 후에,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축도>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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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55
능력을 행하라!
최성욱
2021-02-27
217
654
왜곡의 영을 물리치라!
최성욱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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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스릴을 즐기라!
최성욱
2021-02-13
303
652
이미 성공자니라!
최성욱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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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변화를 기대하라!
최성욱
2021-01-30
161
650
염려하지 말라!
최성욱
2021-01-22
165
649
성숙한 삶을 살라!
최성욱
2021-01-16
190
648
새해에 이렇게 부르짖으라!
최성욱
2021-01-09
258
647
축복의 통로가 되라! (신년감사주일)
최성욱
2021-01-02
192
646
돌파구를 찾으라! (송년감사주일)
최성욱
2020-12-26
157
645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절)
최성욱
2020-12-24
206
644
사명을 이루라! (대림절 #4)
최성욱
2020-12-19
201
643
믿음으로 경배하라! (대림절 #3)
최성욱
2020-12-11
175
642
믿고 순종하라! (대림절 #2)
최성욱
2020-12-05
347
641
경배의 기회를 붙들라! (대림절 #1)
최성욱
2020-11-28
148
640
거절감의 상처를 치유 받으라!
최성욱
2020-11-21
386
639
감사절에 기억하라! (추수감사 온가족 예배)
최성욱
2020-11-14
172
638
영 분별의 은사를 구하라!
최성욱
2020-11-07
156
637
환경을 다스리라!
최성욱
2020-10-31
101
636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가?
최성욱
2020-10-24
135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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